
구한말 대유학자이자 구국항일투쟁의 상징인 최익현은 쓰시마에 유배되어 순국하였다. 쓰시마에서 감금 3년형을 받게 된 최익현은 1906년 8월 28일 아침 이즈하라로 호송되어 왔다. 2년형을 받은 임병찬과 함께 하치만구신사(八幡宮 神社 ) 남쪽에 위치한 제사전습소(製糸伝習所)에 수용되었는데, 쓰시마경비대 수용소가 완성되기 전 3개월간 이곳에 구류되었다.
임병찬의 「대마도일기(対馬島日記)」에 의하면 12월 4일 발병의 기록이 보이며 경비대에서는 사람을 붙여 간호하였으나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하였다.장례는 백제의 비구니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슈젠지에서 치뤄졌으며 유해는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선생의 넋을 기리고자 1986년 한일 양국의 유지들이 힘을 모아 슈젠지에 비를 세웠다.